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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여행

위대한 음악가 모차르트의 불편한 진실

by 솔직담백한J. 2020. 5. 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A. Mozart, 1756~1791)

모차르트의 음악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짧은 생애를 살면서 600여곡에 이르는 엄청난 작품을 남긴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당시 궁정 음악가로서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난 모차르트는 어릴 때부터 신동이라 불렸습니다. 복잡한 곡을 오선지에 쓰면서 다른 작품의 구상이 가능하였으며, 또 한 번 본 악보는 그 곡이 아무리 길어도 한 개의 음표도 틀리지 않고 오선지에 옮겼다고 합니다. 

 

피아노는 3세 때부터 정식으로 치기 시작했고, 5세 때 피아노용 미뉴에트를 작곡했으며, 6세에는 궁궐과 음악학교를 출입하기 시작하여 8세 때 교향곡을 작곡하는 등 타고난 천재였습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천재입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6세 때부터 유럽 각지로 연주 여행을 시켰습니다. 모차르트는 35년이라는 짧은 생애 가운데 14년이나 집을 떠나 연주여행을 다녔습니다. 

 

 당시 모차르트는 여행을 통해 유럽 각지의 유명 작곡가의 작곡 경향을 파악 할 수 있었으며, 특히 당시 크게 인기를 누리던 텔레만의 작품을 듣기만 하고도 척척 흡수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그를 모방의 천재라고 혹평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욕심이 많아 아들을 이용하여 출세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여러 해 동안 받아 왔던 아버지의 지배를 벗어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던 중 1782년 8월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콘스탄체와 하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와 정면 충돌하였는데, 그 결혼이 계기가 되어 모차르트와 아버지 레오폴트의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나면서 세계 순회 공연을 다니며 숱한 찬사를 받아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성장할 수록 이런 찬사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차르트의 생김새

 

어려서부터 여행을 한 탓인지 그의 신체 발육은 나쁜 편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가 단명한 것도 너무 일찍 시작한 고된 여행을 원인으로 보는 평론가들도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의 생김새에는 너무나 특징적인 요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모차르트는 체격이 작았습니다. 신장은 150cm에도 못 미치는 단신이었고 후에는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몸집이 커지고 결국 비만으로 변했습니다. 얼굴은 천연두로 곰보가 되었으며 눈은 근시, 코는 주먹코에다 성격은 신경질적이며 변태적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모차르트의 생김새에서 유명한 것은 유전적으로 왼쪽 귀가 기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1천명 중의 1명 꼴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차르트의 외모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마 자국이 있는 그의 얼굴은 점차 노랗게 되고 부풀어 보였으며, 나중에는 턱이 두 개 처럼 보이는 얼굴로 변했고 머리는 몸체에 비해 지나치게 컸으며, 코는 하도 커서 어떤 신문은 그를 '큰 코의 모차르트'라고 표현했습니다. 눈은 갈수록 튀어나오고 몸은 점점 더 뚱뚱해졌으며 기형의 귀는 머리 스타일로 애써 가리려고 하였지만 잘 가려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차르트의 성격

 

그의 행동 역시 점점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한 성향으로 기울었고 특히 생애의 마지막 2년 동안에는 점차 심해지는 정신적인 소모가 비정상적인 행동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거의 참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행동으로 심해지는 고립 사이에 어떤 상호관계가 있었음은 짐작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고립에 병적으로 반응했고, 그의 반응으로 인해 고립을 더욱 골 깊게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는 아내마저 그와 함께 있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결국에 그는 '나쁜 친구들'과 사귀게 되었습니다. 저속한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모차르트 아내 콘스탄체

 

아내의 낭비벽이 모차르트에게 큰 영향을 미친듯합니다. 아버지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콘스탄체와 결혼한 모차르트는 아내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콘스탄체는 질투심과 낭비멱이 심하고 남편의 천재성을 이해 못하는 여성으로 전해지는데요, 악처이기 때문에 모차르트의 지극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모차르트에게 가난은 아내 콘스탄체의 무절제한 낭비 탓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모차르트가 죽기 2년 전부터 요양을 핑계로 온천에 가 있곤 했는데, 이때마다 모차르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동행해 있었다고 합니다.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콘스탄체는 경박하고 질투심이 강하고 정숙하지 못했던 여성이었기 때문에 모차르트는 함께 사는 내내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의 변태적 기질

변태적 기질과 더불어 모차르트는 성도착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2년 영국 의학잡지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모차르트의 편지 371통을 분석한 결과 이 중 39통에 성도착자로서의 증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변태적인 기질을 이해하기는 힘들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이루어져야 하는 인성교육이 많이 부족했던 모차르트는 너무나 안타까운 비운의 천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