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 여행

연주자의 음악미학

by 솔직담백한J. 2020. 5. 2.

훌륭한 연주가가 되기 위해서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연습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연주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연주가의 몫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연주'란 창작자와 작품에 대한 이해, 그리고 연주자 자신의 음악관을 저제로 하고, 더 나아가 음악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나의 문화적 테두리 속에서 행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음악 연주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이론적으로 심도 있게 논의되어 왔고, 현재까지 많은 연주자와 음악학자들이 학문적으로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즉 음악을 소리로 실제화하는 연주 분야와 음악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는 겉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연주 이론은 음악 미학과 매우 미접한 관계를 갖는데 그 이유는 연주자의 미학관과 연주가 행해지는 시대의 전반적인 음악미학이 연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연주에 관한 이론적 연구는 특히 18세기부터 음악이론에서 활발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시대마다 그 내용 및 중심 관심이 서로 다르게 나타났는데, 각 시대의 미학적 배경과 특성에 따라 연주에서 추구하는 것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 연구의 획기적 성과는 18세기에 즉흥연주와 구별되어 음악 작품의 연주를 지칭하는 개념이 생기면서 나타났습니다. 이때 사용된 연주란 용어는 연사가 원고를 읽듯이 다른 어떤 숙고 없이, 문자로 고정된 음악을 객관적으로 소리화시키는 작업을 의미하였습니다. 이는 당시의 음악이론이나 미학에서와 같이, 수사학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 분야의 주요 저서를 남긴 크반츠는 음악을 웅변에 비유하면서, 훌륭한 연주는 훌륭한 강연과 유사하게 명확한 소리로 청중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렇듯 18세기의 연주론은 청중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한 척도로 보았는데, 이는 영향 미학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사나 연주자가 언어의 힘 또는 음악의 힘을 통하여 얼마나 효과적으로 청중의 정서를 움직이는 거였고, 이것이 바로 연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즉 연주자는 자신의 주관이나 감정 자체를 드러내기보다는 작품에 제시된 감정을 전달하여 청중의 감정을 충촉시키는 과제를 갖습니다.

 

예를 들어 작품의 감정을 잘못 이해하거나, 템포를 적당하게 설정하지 못하거나 장식음을 과다하게 또는 너무 적게 사용하거나 하는 실수가 있는 연주는 좋은 연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연준자는 자신의 주체를 버려야 했고, 연주하는 작품이 표현하는 감정에 빠져서 그 감정을 청중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연주론의 중요한 변화는 1800년을 전후로 미학적 경향이 영향 미학에서 작품 미학으로 바뀌면서 나타났습니다. 작품이 정서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심을 집중했던 미학적 평가는 가사나 표제 같은 음악 외적 요인이 연관되지 않은 순수 기악음악, 즉 절대 음악의 탄생과 더불어 그 힘을 잃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음악작품은 작곡가로부터 분리되어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를 갖는 것으로 인정되었고, 이 때문에 작품의 의미를 다양하게 재구성해 낼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음악작품은 독자적인 미학적 내용을 갖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연주론과 구별되는 음악의 해석론 또는 해석이론 개념이 대두되기 시작하여 이는 20세기에 연주에 대한 중심적 생각이 됩니다. 즉 즉흥연주와 구분되어 연주를 지칭하던 Vortrag(연주)란 용어가 악보를 객관적으로 소리화 시키는 작업을 의미하였다면 19세기 후반부터 연주는 해석으로 이해된 것입니다. 이로써 개별적 음악 작품은 서로 다른 해석을 통하여 다르게 듣고, 다르게 체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20세기의 상황과 함께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기술적인 면에서 전축, 녹음기의 발명 이후 음반(LP, CD)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로써 실제적인 음악 연주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직접적인 음악 강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일회적인 현상이었던 '연주'는 음반의 활성화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존재하게 되었고, 제작된 음반은 고도의 기술 발전에 힘입어 실제 연주와 거의 가까운 생생한 음을 재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음악에 종사하는 인구의 증가와 전문화 경향에 영향을 받아, 작곡가와 연주가의 분리가 정형화되었으며, 연주자 가운데도 장르나 시대 또는 작곡가에 따른 전문 영역이 세밀하게 구분됩니다. 이와 함께 연주를 일종의 해석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작품에 대한 수 십 개의 음반이 쏟아져 나온 상황에서 많은 연주자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통해 다른 연주와 구별되는 자기 연주의 독자성을 주장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20세기 들어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이중의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청중이 정경화의 베토벤 연주를 듣는다면 그들이 이 음악을 레코드로 듣거나, 세종문화회관을 방문하여 직접 듣거나, 그들은 베토벤을 감상하는 동시에 정경화를 감상하는 것입니다. 이때 다른 연주가의 연주와는 구별되는 정경화 특유의 연주를 우리는 '해석'이라 부릅니다. 

 

현재의 연주 경향은 객관적 연주와 주관적 연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에 충실한 연주와 악보에 충실한 연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객관적 연주는 연주자의 주관보다는 작품과 연관된 객관적 사실(악보, 작품의 탄생 시기, 연주 관행, 작곡가의 기록 등)을 중시하는 연주로서, 예를 들어 20세기 쳄발로의 대가인 라도브 스카가 쳄발로로 바흐의 건반악기를 연주한다면, 이는 객관적 연주의 이상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작품이 탄생한 시대의 연주 관행에 따라 가능한 한 그때의 연주 이상을 현대에 그대로 재현하려는 '역사적 연주실제론:정격연주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에 비해 주관적 연주는 연주가의 주관적 음악관, 또는 연주되는 시기 등을 중점적으로 보는 연주로서 글렌 굴드 또는 리히터가 피아노로 바흐의 평균율을 연주한다면, 일차적으로 이들은 바흐의 현대적 해석을 시도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때에는 18세기 작곡가 자체보다는 20세기의 연주가의 주관이 능동적으로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예술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적 리얼리즘  (0) 2020.05.04
베커의 '즉흥연주'  (0) 2020.05.04
위대한 음악가 모차르트의 불편한 진실  (1) 2020.05.02
인간의 감성, 미학  (0) 2020.05.01
'랩소디 인 블루'를 작곡한 조지 거슈윈  (0) 2020.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