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수사학의 관련성
음악이 무엇을 표현한다는 사고에는 음악과 언어를 묶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흔히 듣는 "음악 언어"라는 표현은 음악을 언어에 비추어 설명하려는 경향을 드러냅니다. 언어와 음악을 관련시키는 것은 오랜 역사를 가졌습니다. 이는 어느 때보다 16세기에 두드러지게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8세기까지 그러한 사고는 지속되었습니다. 19세기에, 즉 음악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다른 예술 분야로부터 독립할 때에 음악과 언어를 비교하는 생각이 점차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음악사를 살펴보면 음악을 언어와 관련시키는 것이 음악에 좋지 않은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17세기 초 오페라를 만든 사람들은 언어의 힘에 기대어 새로운 음악 양식(모 노디)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언어의 음악적 표현 때문에 작곡 규칙으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경우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과감한 음악도 언어의 음악적 표현을 위해 나타났습니다. 이런 면을 보면 언어가 음악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적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에 대해서 19세기 음악미학(음악의 형이상학 이후)은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수사학은 고대 이후 중요한 학과목의 위치를 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설득력 있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수사학이었습니다. 유럽 각국들은 나름대로의 수사학 전통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16세기 이후 독일의 라틴어 학교에서는 화술이 중심적인 학과목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말하는 원칙과 예 그리고 모방을 통해 화술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교육이 음악에 적용되었습니다. 바흐와 헨델도 이런 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았습니다. 작곡 과정은 동기의 발견, 곡 전체의 구성, 곡의 가공, 장식, 연주 등의 수사학적 용어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사의 의미와 관련되어서는 음형 이론이 나타나서 일정한 말의 의미를 일정한 음형으로 표현했습니다. 음형 이론에 사용된 용어들은 고전적 수사학으로부터 빌려온 것들입니다. 이 이론은 감정적인 내용과 묘사적 효과를 일정한 음형들과 연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18세기의 바로크 음악은 이러한 수사학적 사고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18세기의 철학자들 역시 음악과 언어의 관련성을 말했습니다. 칸트는 언어에 관련된 소리가 있고 이 소리가 말하는 자의 감정 상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이런 점 때문에 음악이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곧 테마라고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헤겔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18세기의 기악이 호프만 이후로 주로 절대 음악으로만 이해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음악이 나올 당시에는 그 테마들이 감정을 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샤스텔뤼는 '테마'에 해당하는 내용을 '모티브'라고 했는데 오늘날까지도 모티브와 테마라는 용어는 서로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태리에서는 이 말을 음악에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미술에서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화가가 그리고자 한 그림의 중심 된 내용을 뜻했습니다. 이러한 어원을 알고 그 의미에 맞게 작곡가가 작곡했다고 하면, 고전적 기악곡도 음악 외적인 내용을 표현하려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곡가들이 그 어원을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샤바농에게서는 음악을 언어로부터 떼어내려는 생각이 나타났습니다. 음들은 무엇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체로 의미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는 위와는 다르게 음악이 사람의 말을 모방하지 않아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아 어떤 표현 대상(여기에서는 "감정")과 음악을 분리시키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음악을 언어로부터 떼어서 생각하는 일입니다.
음악에서 수사학을 최후로 정리한 사람이 음악학자 포르켈입니다. 그는 바흐를 음악사의 끝으로 볼 정도로 그 사고가 바로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예전의 이론으로 새로운 학문인 음악학을 세워보려 했던 것입니다. 그가 모델로 삼을 수 있었던 이론은 수사학 이외에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언어의 문법 구조를 그대로 음악에 옮겨 왔습니다. 그의 작업은 미적(감성적)이라기보다 주로 논리적이었습니다. 그는 "음악적 논리"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는 테마 모티브적 작업, 1700년경 이후의 기악에 나타난 조성적 화성에 의한 큰 형식의 정립, 이 두 점을 지칭했습니다.
테마 모티브적 작업은 한 악장이 처음부터 끝까지를 작은 음악적 생각(테마, 모티브)이 주도하여 음악을 관련성 있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테마와 모티브는 멜로디적으로 리듬적으로 변형되며, 다른 화현층으로 옮겨지기도 하며, 다른 조성에 넘겨지기도 하고, 여러 악기에 의해 바뀌어 연주되며, 조각조각으로 쪼개지기도 하며, 다른 테마의 조각과 결합되기도 합니다. 한편, '조성적 화성에 의한 형식 정립'은 한 조성에 속한 화현이 주변의 다른 조성들과 결합하여 관련 조직을 만들어 이 조직 안에서 각 부분들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C장조 조성에서 d-f#-a는 부속 조성 G장조의 도미넌트이며, G장조는 C장조의 도미넌트이다. 따라서 작품의 화성적 기본 C장조와는 간격이 생기면서도 논리적 맥락이 유지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칸트와 동시대의 음악학자였던 포르켈은 "음악적 논리"를 찾는 것을 음악학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음악의 논리에서 주어, 접속어, 술어의 문법을 생각했는데, 이러한 '소리로 된 생각의 연결'은 음악을 자율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미와 음악의 논리는 서로 잘 맞지 않는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는 개념으로 표현되기 어려운 것인데 반해, 음악적 논리는 표현될 수 있는 분명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르켈 스스로가 말하는 "절대미"와 "상대 미"의 개념이 그의 '음악적 논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예술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로크 시대 교회 음악가의 삶 (0) | 2020.05.07 |
---|---|
절대 권력을 통한 음악의 발전 (0) | 2020.05.06 |
화성학이 확립된 과정 (0) | 2020.05.05 |
소나타 형식이 정립된 과정 (0) | 2020.05.05 |
Madrigale and Suite (마드리갈과 모음곡) (0) | 2020.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