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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여행

레치타티보(Recitativo)의 역사

by 솔직담백한J. 2020. 5. 5.

레치타티보 ( Recitativo , 이태리어)

레치타티보는 우리말로 낭송하다 라는 뜻입니다. 선율 자체의 구성보다는 언어의 리듬과 억양에 맞추어 낭송적 성격을 살리는 극적인 노래라는 뜻입니다.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에서 줄거리 진행이나 산문적 부분을 낭송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레치타티보의 역사

 

1600년경 오페라가 발생할 때 모 노디와 함께 탄생하였습니다. 18세기 이태리 오페라는 레치타티보를 두 가지로 나눕니다. 

레치타티보 세코(Recitativo secco) : 단순히 건반악기(쳄발로)의 보조적 화음에 맞춘, 리듬이 자유로운 낭송적 노래.

▷반주 레치타티보 : 오케스트라에 의해 반주되는, 음악적이고 극적으로 더 많은 표현력이 부여되는 낭송적 노래.

 

초기 오페라에서는 레치타티보가 주로 모노디를 어떻게 노래하느냐와 관련지어 생각되었습니다. 도니는 그의 무대 음악에 관한 글에서 모노디를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1. 레치타티보 양식(낭송적 양식): 페리의 에우리디체 첫 노래와 같은 것으로 뭔가를 시적으로 표현하고, 긴 음표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언어와 가까워지려는 것.
  2. 표현양식: 몬테베르디의 아리안나의 탄식처럼 말의 의미와 인간의 감정을 강조하는 것.
  3. 이야기 양식: 페리의 에우리디체 여자 전령의 노래처럼 단순한 전달에 그치는 것.

레치타티보는 17세기 초에 모 노디의 굴레를 벗어나 독립적인 것이 되고 장절의 구성을 보입니다. 또한 아리아에 우사한 레치타티보인 아리오조가 첨가됩니다. 이런 모습을 띠게 된 것은 17세기 초 이태리의 칸타타가 줄거리를 말하는 부분과 관찰하는 부분이 상호 교차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페라 부분에서는 몬테베르디의 후기 작품 이후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18세기 이태리 오페라는 세코 레치타티보와 반주 레치타티보를 형성했고, 이것이 다른 나라에서도 거의 그대로 통용되었습니다. 레치타티보는 박자를 자유롭게 구사했습니다. 박자가 악보에 나타나 있더라도 성악가는 그것을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즉흥연주는 자주 실행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단지 몇 개의 장식법이 악보와 다르게 연주되었습니다. 레치타티보는 전조를 자유롭게 구사했는데, 어떤 조성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행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세코 레치타티보에서 쳄발로 반주는 빠른 패시지나 심한 기교를 피하도록 했습니다.

 

17세기 말 이후 레치타티보는 노래가 시작되기 직전에 다음 화음으로 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노래의 끝에서는 노래가 반주의 종지 이전에 마무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노래의 끝에서는 노래가 반주의 종지 이전에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서로 맞물리도록 레치타티보의 끝 화성은 아리아의 화성에서 보아 딸림화음에서 끝나도록 했습니다. 레치타티보는 초기에 여러 개의 악기로 반주되었으나 17세기를 지나는 과정에서 쳄발로(교회음악:오르간)와 베이스 성부를 연주하는 비올라 다 감바(또는 첼로)가 함께 했습니다. 

 

18세기에 오페라 부파가 활발해지면서 레치타티보는 말하는 방식에 거의 가까운 빠른 속도가 되어 음악적 면이 개입할 여지가 크게 줄었습니다. 반면에 오페라 세리아는 반주 레치타티보를 자주 사용하며 극적인 표현력에 더 주력했습니다. 그래서 세코 레치타티보와 반주 레치타티보가 명확하게 갈립니다. 세코 레치타티보와 반주 레치타티보, 아리아를 이으면 극적 장면을 중단 없이 연결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오페라의 레치타티보는 처음부터 이태리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프랑스어의 억양과 프랑스 시문학의 원칙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반주에 자주 사용하고 극의 진해에 집중함으로써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대비가 이태리 오페라에서 보다 덜 분명했습니다. 글룩은 프랑스의 레치타티보를 이태리식 반주 레치타티보에 접근시키고, 아리아에는 레치타티보적 요소를 첨가하여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대비를 완화했습니다. 

 

18~19세기에는 반주 레치타티보가 더욱 많이 사용되는데, 악기의 참여가 크게 늘어납니다. 이는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는 반주 레치타티보를 줄거리 전체를 아우르는 무한 선율과 연결했습니다. 한편 세코 레치타티보는 희극적 오페라에서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기악적 레치타티보

레치타티보를 기악에 옮긴 최초의 작곡가는 본포르티(Bonporti)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의 4 성부 콘체르토(Concerti a quattro, op. 11, 1715)가 바로 그것인데, 이는 바흐의 반음계적 판타지와 푸가(Chromatische Fantasie und Fuge), 하이든의 심포니 71번(1761),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op. 31, no. 2, 1802)와 9번 심포니 마지막 악장에도 나타납니다. 19세기 음악에서는 어떤 생각을 음악에 집어넣으면서 레치타티보적 현상이 기악곡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에서 '시인이 말하다'가 그런 음악입니다. 20세기에는 쇤베르크가 레치타티보적 기악을 매우 의도 적으로 사용한 작곡가에 속합니다. 그는 그의 오케스트라 소품 중 다섯 번째 것을 '오블리가토적 레치타티보'라고 했습니다. 그의 레치타티보를 위한 변주곡은 일종의 음악적 산문을 의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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