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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여행

모더니즘적 특성 -신음악

by 솔직담백한J. 2020. 5. 5.

모더니즘적 특성 -신음악

새로운 표현과 형식의 이상형은 무조음악의 미학적 배경을 이룬 '표현주의'입니다. 당시 미술, 문학, 건축 등 예술의 제분야에서 나타난 표현주의는 주관의 표현 욕구에 충실한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던 독일적인 예술경향(프랑스의 인상주의적 예술을 반대하는)입니다. 여기서 예술적 표현은 자유롭게 작용하는 주관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므로 내면의 강렬함을 추구하는 표현주의 음악은 전통적 미의 기준이나 척도에 맞지 않는 새로운 미의 이상을 보여주고 예술의 고착된 형태나 인습을 타파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청중의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 선율은 "중성화되어 자체의 비판력을 상실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데 반하여, 날카롭게 청중의 신경을 자극하는 불협화음은 "그들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며", 가상의 세계, 유희, 순응적 태도를 부정함으로써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쇤베르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술은 장식이어서는 안 된다. 진실이어야 한다." 
"예술은 재능에서가 아니라 필연에서 나온다"

이렇게 주장하며 전통적 아름다움과 대립되는 진실의 미학을 펼치게 됩니다. 이러한 미학관은 쇤베르크 음악의 가치를 인정하고 널리 전파한  아도르노에 의해 더욱 확고해집니다. 아도르노는 그의 저서 '신음악의 철학'에서 쇤베르크 음악이 진정한 20세기의 음악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도르노는 쇤베르크 음악을 통해서, 현대에서 음악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보다는 진실을 일깨워주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확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음악 제1세대들의 미학관은 넓은 의미에서 전통적인 모더니즘의 미학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음악 1세대 :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베르크, 베베른, 바르톡)

 

모더니즘이란 19세기 중엽 보들레르 이후, 음악에서는 바그너의 트리스탄 이후 나타난 예술경향으로 우연적인 것과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것을 수용하여 독창적으로 새롭게 발전시켜, 당시의 진정한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특징을 갖습니다. 즉 예술은 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보여주며, 이러한 예술은 역사를 초월하여 영향력을 미치는 고전적으로 발전된다느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계몽과 이성에 대한 믿음, 예술의 자율성 추구, 예술의 형이상학적 요구 등을 특징으로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기법과 새로운 진실의 미학으로 전통에서 벗어났던 쇤베르크가 근본적으로 전통적 모더니즘 미학의 바탕에 서있다는 것은 매우 특이합니다. 쇤베르크는 무조음악과 12 음기 법을 서양음악사의 논리적 귀결로서, 즉 바흐부터 베토벤, 브람스, 말러에 이르는 전통음악의 계속적인 발전 선상에서 이해하면서, 항상 자신의 음악의 역사적 필연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음악은 다른 신음악 1세대 작곡가들과 함께 20세기의 고전으로 체계화되기를 원했고, 오늘날 그렇게 수용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쇤베르크와 신음악 1세대의 모더니즘 경향은 그들이 고수했던 예술의 자율성, 예술에 대한 내재적 요구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음악이 그 어떤 음악 외적 연관성(예를 들어 청중의 수용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음악 자체의 독자적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들의 음악이 청중과의 거리감을 갖게 된 것은 오히려 당연하게 보입니다. 또한 이들은 새로움을 통한 진보 또는 발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고, 작곡가의 가장 중요한 미적 능력은 독창적인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러한 모더니즘적 특성은 1910년대 신음악의 미학적 본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음악은 세계의 가장 내면적인 본질을 표현한다."는 낭만적 믿음을 갖고 있었던 쇤베르크는 모더니즘 미학의 대표적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의 유럽은 사회 정치적으로 변화의 도가니에 휩싸이게 되었고, 문화 전반에도 이러한 변화가 급격하게 파생되었습니다. 이 시기 음악의 변화로는 신음악 작곡가의 세대교체를 들 수 있습니다. 즉 전통적 음악 양식을 파격적으로 깨고 급진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던 신음악은 이제 1920년에 이르러 또 다른 변화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20년을 기점으로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등의 작곡가들은 12 음기 법, 신고전주의 등의 양식 변화를 보여주었지만, 이들의 음악 언어와 사상은 아직도 전통과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었고, 여전히 청중과 화합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항에서 2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던 힌데미트, 크세넥, 바일, 아이슬러, 프랑스 6인조 등은 선배들과는 다른 신선한 모습으로 청중을 사로잡았고, 신음악의 2세대로서 음악계의 실제적인 지위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18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의 음악은 서로 매우 다른, 개성 있는 양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술 철학적 시각에서 모두 전통적 미학과의 단호한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신음악의 1세대에게는 조건 없이 고수된 음악의 자율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이들을 묶어주는 요인이 된 것입니다. 신음악의 1세대들은 음악의 형식, 양식, 편성의 측면에서 19세기의 음악 장르를 해체하였지만, 낭만주의적인 절대 음악의 이상을 고수한 반면에 2세대는 음악의 진정한 새로움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것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음악관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작품 활동의 출발점을 삼았습니다. 먼저 '음악의 자율성'을 지지하는 기존의 시민적인 음악회 제도는 "투쟁되어야 할 대상"이라 보았고 음악을 인간의 삶에 그리고 일상생활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일반인과는 거리를 갖고 존재하는 낭만적 천재 예술가 대신에 예술가를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시대의 흐름에 민감한 새로운 예술가상이 형성되었습니다. 바일은 통속적인 유행 음악과 결합된 작품을 발표했고, 아이슬러는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실용음악을 썼으며, 힌데미트는 비교적 순수 음악적 방식으로 실용음악을 주장했으며, 라디오 음악과 교육용 음악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제 예술을 위한 예술은 이들에게 진부하게 느껴졌고, 그 대신에 음악의 기능성과 목적성이 중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실용음악적 경향은 당시 미술사조의 영향을 받아 신즉물 주의로 이해되었고, 이 개념이 내포하는 핵심은 "표현주의에서 나타났던 예술의 추상화와 인간의 소외에 대한 저항 정신이었습니다. 바일은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폭넓은 청중의 관심에 접근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만이 음악은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실용음악이 되기 위해서 먼저 음악은 과거에 가졌던 '알기 쉬움'과 '음악활동의 기쁨'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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